심여화랑 이야기 – 트레모시네

코모는, 일본에서 공부한 요리사가 맛을 보장한다던- 풀 죽은 스시를 내놓은 일식집과

우체국을 찾아 소포를 보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짐이 느는 게 제일 못참을 일이지요.

그래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선물을 해야겠다하면

습관처럼 그냥 우체국에 가서 소포로 부치곤 합니다.

우체국 이용이 제일 싸고도 편한 곳은 홍콩과 싱가포르입니다.

산 물건 들고 가서, 그 크기에 맞는 상자 고르고, 테잎 사서 두르고, 맘에 맞는 카드도 사서

금방 부칠 수 있는 능률적인 원스톱 시스템이지요.

동양이 그러니 이태리야 쉽겠지 한 착각이 시간을 끈 원흉이었습니다.

“상자? 그런 거 없는데..”

“테잎? 네가 가져 와야지.”

이럴 줄 알았나요!

더군다나 상자나 테잎 사는 게 쉽지 않은 이유.

도대체 언제 일하나 싶게, 제 눈에는 상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문 닫고 있더라구요.

이태리의 우체국은 비능률적이라는 여행 안내서 얘기에 적극 동의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 하느라 한나절을 허비하고 ,떠나기엔 뭔가 아쉬워 한바퀴 돕니다.

호수는 참으로 맑습니다.

호수를 따라 나 있는 일차선 도로를 가다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카페에 들어갑니다.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던 커플이 아는 체를 합니다.

밥이 좋을까 국수가 좋을까 하다가 매일 먹는 파스타를 누르고 밥을 택합니다.

트러플을 넣은 리조또와 하우스 와인입니다.

이 와인 값이 싼 곳에서 매일 하우스 와인만 시키다니…

기대보다 트러플의 향기가 높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합니다.

앞 쪽에 자리한 보기 좋은 나이 든 노신사와

눈빛이 밝고 현명해 뵈는- 중년의 끝자락에 닿은 여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입니다.

영국 사람들…!

안 보는 체 힐끗거리며 냄새를 맡아 봅니다.

옷차림에도,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도 그리고

목소리에도 우아하고 귀한 자태가 담겨 있어 호의를 느낍니다.

둘 사이엔 범상치 않은 뭔가가 있어 뵈

제 나름대로 소설을 써 봅니다.

흠..로맨스그레이..어떤 내용일까?

그런데 밝은 눈빛의 그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제게 말을 걸더군요.

심심해서 창 밖으로 빵조각을 던지며 청동오리를 호객(?)하고 있던 제게,

우르르 몰려 드는 청동오리떼 중 한 커플을 보라면서요.

소설 쓰던 거 들킨 듯 깜짝 놀랐지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인데,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 사연은 아름다움 쪽인데..하던 소설이요.

노신사가 아주 맛있다며 낮으막히 상대에게 먹길 권하던

티라미수 케익을 따라 시켰어요.

속살이 촉촉하고 그리 달지 않아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기 그만 이더군요.

제 짧은 소설의 주인공들도 떠났고

이젠 일어나 다음 장소로.

베네토 지방으로 가며, 갈 곳에 대해 갈등을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베네치아-베니스라고도 하지요-로 갈까? 하다

그곳에 가려면 차를 두고-아고, 짐을 어찌 끌고 바포레토라는 배로 갈아 타야 한단 말인가

생각만으로도 번거로워 이번에는 빼자. 베로나쪽으로 갑니다.

혼자 다니는 여행엔 참 강한데 짐 앞에선 맥을 못춥니다.

베로나 못미처에 이태리에서 제일 큰 호수가 있습니다.

가르다 호수입니다

트렌티노, 롬바르디아, 베네토 세 지역에 걸쳐 있는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호수입니다.

카페에서 머뭇거리다 어느새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 버렸지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부부에게 어느 곳이 이 근방에서 제일 좋은가 묻습니다.

그들은 가르다 호수 에서도 제일 좋은 곳이라며 지도에 표시를 해 줍니다.

처칠도 와서 잤고, 자기네도 잤다는 곳.

아하.이렇게 표현하면 되겠구나 한 수 배웁니다.

그곳에서 자게 되면 처칠도 묵었고 나도 묵은 호텔.. 동숙한 호텔 그러면 되니까요.

가르다 호수 남쪽과 북쪽 사인이 나옵니다.

남쪽부터 보면 되지 뭐. 그러나 경치를 보기엔 주위가 너무 어둡더군요.

산인지 물인지 구분이 안되니까요.

이태리 곳곳에 i표시가 된 여행 안내소가 많이 있습니다만

문 연 곳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시즌이 아니라서 ,근무 시간이 지나서 등등..

대형 지도 하나만으로는 헤맬 수 밖에 없지요.

처칠이 잔 곳이건 뭐건 뭐라도 반짝여 주기를 기대합니다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불꺼진 간판들을 보며 도대체 어디에서 자게 될까 지쳐갑니다.

별 셋 OK, 별 넷짜리는흥정.

이런 원칙은 사라지고 잠잘 곳만 나와다오…좋다! 별 5개도 용서하자.

가다가 드디어 불 켜진, 간판도 큰 호텔을 발견

반갑게 들어섭니다.

잠에서 깬 듯한 사람이 영업 안한다며 손사래를칩니다.

한 군데 호텔 소개를 받고 지나온 길을 되집어 갑니다.

일찌감치 지나온 곳에 아주 안락해 뵈는 별 넷짜리 호텔입니다.

리셉션 아가씨와 흥정에 들어갑니다.

영국에서 공부할 떄 룸메이트가 한국인이였다며 아주 반가워합니다.

더 싸게 해달라는 말에 최선의 가격임을 강조합니다.

방에 가서 그 아가씨의 큰 호의를 실감합니다.

그 호텔 중앙에 자리한- 호수가 바로 앞에 보이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테라스를 가진 방이었거든요.

아마 제일 좋은 방일 듯합니다.

깨끗한 이부자리와 침대 위에 놓인 쵸코렛,그리고 무료로 준 생수 한 병..

여태 어느 호텔보다 서비스가 따뜻하다고 느낍니다.

날이 밝으면 훨씬 아름다워질 풍경을 기대하니,피곤이 가시고 느긋해집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실책은 음악을 놓고 온 일입니다.

항상 벗 삼는 CDP와 여행 날짜에 맞춰 준비하던 CD를 놓고,

애플에서 나온 히트상품 i pod를 들고 왔는데

차에서 작동이 안되는 바람에 영 허전한 여행이 되고 말았지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말벗해 주기론 음악만한 게 없는데 말입니다.

정말 좋은 음악만큼 마음 놓고 기댈 만한 좋은 벗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라도 무게를 줄이려 놓고 온 걸, 날이면 날마다 후회를 합니다.

CD가 장착되지 않은 새차다 보니

카세트 테이프라도 사려고 동네마다 기웃거리나, 놀랍게도 카세트테잎이

이제는 완전한 사양품목입니다.

클래식은 커녕이고 그나마 폐기 처분 직전의 먼지 묻은 몇 개의 테잎을 샀는데,

– 얼마나 반가운 이름 페리코모였을까요- 늘어져 나오는 소리에

“아, 이제 음악은 그만~! “잊기로 했을 정도였지요.

FM조차 클래식과는 동떨어진 음악 아니면 잡담하는 프로그램 뿐이니..

라디오만 틀어도 넘치느니 음악일 줄 알았던 이태리.

전체 이태리 여행을 통해 음악다운 음악을 들은 건

피렌체 호텔에서 본 프랑스 방송에서 특집으로 해 준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가 나오던 프로 하나였다니까요.

가르다 호수의 아침은 싱그러웠습니다.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도 좋고, 내다 뵈는 경치며, 묵는 사람들의 수준..날씨까지

다 만족스러웠어요.

하루 더 있어야겠다.

지도를 들여다 보며 호수를 돌아 보며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친했던 이태리 친구가 트랜티노 출신이라, 그 친구 고향땅 좀 밟아 보겠다고 나섭니다.

지도에 나오는 손가락 한 마디 거리가 제법 길더군요.

호수가를 따라 경치가 좋다 싶은 곳에는 여지 없이 사람들이 모여 살더군요.

놀라운 것은 호수를 빙 둘러 아주 가파른 산들이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season off인 듯한- 정말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처칠이 묵은 호텔도 기웃거립니다.

규모는 작은데,빼어난 곳에 자리잡았더군요.

물이 어찌나 맑은지, 떠서 마셔도 될 듯합니다. 이를 보고 수정같이 맑다고 하겠구나 싶더군요.

발도산을 오르내리는 리프트는 11월에는 쉰다고 해서 그냥 드라이브만 하기로..

도는 길에 경치가 좋아 뵈는 식당에 들릅니다.

청바지 차림의 몸짓이경쾌한 여주인이 반깁니다.

뭐 먹을까 하는 질문에 가르다 호수에서 잡은 생선 요리를 권합니다.

부오노!

와인은?

전혀 망설임 없이 그 동네에서 나오는 누보 와인을 추천하더군요.

누보라는 말이 불어로 new의 뜻이니, 이곳에서는 노벨레. 역시 햇와인이란 말이지요.

대낮에 음주운전…,취하면 쉬었다 가지 .

느긋하게 마음먹고 한 병의 와인과 파스타 하나와 메인으로 생선까지 시킵니다.

햇살은 마치 청명한 가을 날씨입니다.

먼저 자리한 그 동네 사람들이 저를 가끔 가끔 바라봅니다.

아랑곳않고 와인과 파스타를 여유롭게 즐깁니다.

맛이 어떠냐며 주인장이 묻습니다.

델리시오소! 음표 읽듯 웃음 가득 띄워 답합니다.

창 밖 호수 건너 편에 보이는 산동네를 가리키자,여주인이 꼭 그곳에 들르길 권합니다.

트레모시네.

두 잔쯤을 남긴 와인과 헤어져 트렌티노 지방으로 향합니다.

트랜토 찍고 돌아와 아름답다는 산동네 트레모시네로 갑니다.

가파른 산길, 차가 반대편에서 나타나면 뒷걸음질쳐 비켜 줘야하는 길.

자동변속에 익숙해져 있다가, 맨 땅에서도 시동을 꺼뜨리는 수동초보가 되니,

제일 싫은 건 언덕길에서 뒷걸음질 치는 거더군요.

딱 한 대만 지날 수 있는 길, 그것도 앞의 시야가 거듭 막히는 커브길의 연속이니

옆에 늘어선 바위들의 웅장함을 즐길 여가가 없더라니까요.

차 지나고 난 후 아휴, 저 길가의 바위들 엄청 예술인데

다시 돌아가 보기엔 길이 허락을 않으니, 이따 내려가다 길게 보야지 아쉬워합니다.

차에서 한 번 내다보기에 바위들의 규모는 놀랍기만 합니다.

열려라 참깨 분위기의 환상적인 돌나라를 거쳐서 산 정상을 향해 갑니다.

이 등성이 저 등성이마다에 적지 않은 규모의 마을들이 있더군요.

건물이 끄는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호텔도 있네. 하루 더 잔다고 하지 말고 여기서 잘 걸.

멀리 아래로 묵는 호텔이 아련히 건너다 뵈는 곳입니다.

기왕에 온 거 제일 높이까지 가보자.

길이 끝나는 곳에 빌라 같아 뵈는 건물이 있고, 그 중 한 동에 사람이 보입니다.

부부입니다. 반가워 손을 흔듭니다.

부인은 테라스에 있고 남편은 아래층으로 내려 옵니다.

어느 말할 수 있나요? 독어, 불어, 스페인어?

테라스에서 부인이

한 가지 말마다 그 나라 말로 묻더군요.

왜 영어는 묻지도 않을까.

“아블로 에스파뇰 운포키또”-스페인어 약간 하는데요.

더듬거릴 생각하고 대답하니까 남편이 영어로 “스페인어 한다구?’하잖아요.

이 분들은 독일사람들이었어요.

그곳이 아름다워 10년전 부터 뮌헨에서 한 달에 두 번씩 와서 쉰다네요.

건너 편 보이는 산이 발도 산으로 높이는 1600m,

이 동네는 어떻고 저 뒷 동네는 어떻고

호수에 오물이 들어 갈 수 없도록 파이프 라인이 되어 있어

물이 그토록 맑게 보존이 된다는 거 까지 상세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다니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참 이상하리 만큼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남자분의 목소리가 그랬어요.

아주 익숙하고 친근해서 잘 알던 사람의 목소리 같은 느낌.

옛날에 있던 일이 다시 내 앞에서 벌어 지는 거 같은 느낌을 기시감(旣視感)이라 하지요.

아는 사람인 듯한 착각은 기지감(旣知感)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저는 곳곳에서 기지감이 많은 편입니다.

잘 알아 듣겠는 독일 아저씨의 영어 발음이 귀에 쟁쟁한 채로

그 사람을 어떻게 안다고 .. 원, 말이 되야지!

기지감에 야단을 쳐가며 하산을 서둘렀지요.

어두워지려고 해니 꼬불꼬불 많은 길 중 온 길을

찾아 돌아 가기가 쉽지 않을 듯도 했고

무엇보다도

보다 만 느낌의- 멋진 바위들의 향연을 다시 보고 싶은 맘이 컸거든요.

그러나 그 사이 너무 어두워져 바위는 조명을 밝힌 몇 부분만이 드러날 뿐.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는 기약으로 내려왔습니다

호수 한 바퀴 돌아 가는 길이 너무 멀어 밤에 호텔로 돌아 와

그 호텔의 자랑거리인 스파를 이용하곤 긴 잠에 빠져 든 곳.

가르다 호수였습니다.

가르다에서 트렌티노의 산길을 돌고 베로나로 볼로냐로 그 다음에는

고속도로로 해서 로마..그리고는 싱가포르 하루 이틀 지나 미얀마로 갑니다.

미얀마는 다음으로 미루지요.

이번에는 디지탈 카메라의 메모리 칩이 없어져 사진을 싣지 못했습니다.

미얀마 전체가 역시 그 메모리 칩에 있으니 아쉽게도 사진 없는 기행이 될 예정입니다.

현재 화랑에는 미얀마에서 가져온 그림들로 빼곡합니다.

액자를 일일이 끼우기에는 장소와 시간이 모자라

옷을 완전히 입히지 못한 채로 펼쳐 놓고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치 장터 같지요.

평소처럼 오셔서 편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정신이 좀 없는 편이지요마는

가격 대비 꽤 괜찮은 그림들이라 오히려 신이 나실 수도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시간 예약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4.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