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화랑 이야기 – 천년의 화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뭐지요?

그럼 금방 중국화가들을 떠올립니다.

다루고 있는 그림들과는 좀 다르지요.

당의 왕유, 원의 조맹부, 예찬, 명과 청의 경계에 있던 팔대산인…

명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동기창이 나눠 놓은 남종화, 북종화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문인화와 채색화중,단연코 문인화 취향입니다.

그중에서 상해 박물관에 소장품이 적지 않은

八大山人의 그림을 보기위해 상해를 다녀 왔습니다.

작은 책자로만 넘기던 그의 그림이 점점 좋아져,

그림 밑에 써 있던 작은 글자 ‘상해 박물관 소장’을 새기다 달려간 거죠.

팔대산인은 주답이라는 이름을 가진 명나라 왕족입니다만,

살던 때가 명이 망하고 청으로 넘어간 시절이라

오랑캐 나라 청을 받아 들일 수가 없어

미치광이 떠돌이 중 행색으로

불우한 세월을 보내며 그림에 한을 풀었습니다.

한마리 외로운 새-孤鳥로 대표되는 간결한 그림을 보노라면

세상에 적응을 못한 쓸쓸함이 진하게 풍겨옵니다.

살아 생전 고독했으나,많은 한족들이 뒤를 이어 그를 추모합니다.

그가 원나라 왕족이고 명나라에서 구차한 삶을 이어갔더라면

기억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가 흐르고 나서 옆 나라에서 사는 후대後代가 묻습니다.

오랑캐란 무엇인가?

단어 안에 가득한 야만의 냄새, 정말 그대로인가?

중화 사상 안에서 오랑캐들이 다스린 시대는 사실보다 많이 폄하되어 있습니다.

원이 그렇고 청이 그렇지요.

과연 원과 청이란 왕조는 야만으로 가득한 세월이었던가?

오로지 그림만을 놓고 보아도

원의 조맹부, 황공망, 예찬, 오진등의 작품은,

다른 왕조 대비 결코 낮은 자리에 놓을 수가 없는,

아니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기품이 가득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랑캐의 시대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당나라 때는 인물화가 자리잡고, 송나라에 들어서 종이의 발전과 함께

두루마리 그림이 생겨, 그림의 지평이 옆으로 넓어지면서 산수화가 발전했습니다.

원나라에 이르면 시,서, 화에 전각이 어우러지며 그림의 완결이 이루어집니다.

그림은 물론, 글씨와 시 게다가 낙관까지요.

그러나 명에 이르면 오히려 퇴보랄 수 있는 사의화-뜻그림이 주종을 이루지요.

그러다 보니 실경 보다는 제목 주고 그에 맞춰 그리는

생기 없는 그림들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틀에 박힌, 어디서나 그게 그거인 산과 풍경이 펼쳐지게 되는게 명때부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풍을 여과없이 받아 들여 가보지도 않고 이어 내려온,

우리의 산하하곤 무관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중국 그림을 접해보면

우리에겐 명작으로 알려진 누구의 무슨 작품도

알고 보면 중국 걸 보고 베낀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알게 되고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애송되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왕양명의 한글판 버젼이라는 걸 알았을 때와 같이요.

미술쪽으로 표현한다면 왕양명 버젼의 사의화인 셈이지요.

제 생각으론 이런 장면이 바로 오랑캐입니다.

제 문화를 갖추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오랑캐를 해석한다면 말입니다.

청에 들어 문화가 꽃 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그들을 만주오랑캐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요?

선조들은 그랬을지라도, 바래어가는 문화의 뒤켠에 있던 한족이

넘볼 수 없는 찬란한 문화지절이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으뜸으로 꼽는 조맹부의 작화추색도는 명작 중에 명작이나,

그는 송나라 좋은 가문의 한족으로서 원을 받아 들인- 훼절한 한인 대접을 받습니다.

근현대 중국화 이론의 대부인 부포석조차

“그의 작품은 뛰어난 면이 있으나, 송에서 원으로 넘어가면서 절개를 지키지 못한 회색주의자” 라며, 작품보다는 인신 공격을 하더군요.

이렇듯이 오랑캐 왕조의 녹을 먹는 한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모습도 여태껏 유효합니다.

중화사상이 구심점이 되는 우월성은

앞으로도 생각해 봐야 할 녹록치 않은 경계입니다.

누구든 이름을 붙여 놓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하다보면

사회 전체적인 맹목이 생기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중심적 우월성을 가진 민족이 힘이 생기면

주변 문화를 얼마든 누를 수 있는 야만적 힘이 생기게 되니까요.

오랑캐들, 야만인들..

한족이 다스렸던 당, 송, 명이 몽골의 원, 만주족의 청과 비교해

수승하기만 한 건지는 곰곰 짚어봐야 합니다.

좋아하는 팔대산인 주답의 그림 대신

저보다 훨씬 그의 존재를 높이 치는 중국에서

죽은 후에 가치가 떨어진 좋은 원과 청의 화가들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나 역할로부터의 추락을 인정할 수 없는 이.

팔대산인.

그의 sign은 초서로 해석하면 哭之 笑之(곡지소지)랍니다.

울다가 웃다가 하는 그의 모습이 처연하게 느껴지지요.

그에 관한 얘기는 전설처럼 인구에 회자됩니다.

명이 망한 날짜-3월 19일을 동물모양으로 그 옆에 써놓고

와신상담하듯 지냈다는 얘기며,

미치광이 행세로 술과 여자들과 지냈다는 얘기며..말이죠.

전혀 욕되지 않고 동정과 의분을 사는 얘기들이지요.

그리고 보니 민족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중화민족의 대의명분용

허위 의식이 대량으로 번진 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줏대도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같이 변죽을 울리고요.

문화의 가치란 출신에서 비롯된다기 보다는

지니고 가꾸는 삶의 현장성이 더욱 중요하단 얘기가 길었습니다.

다시 상해로 가지요.

북경에서 30만이 넘게 구경했다는 인상파전이 상해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불란서인상파회화진품전

orsay 박물관에서 빌려 온 그림들입니다.

마네, 모네, 드가, 르노와르등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작품 51점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20만이 넘는 관중들을 동원했는데, 기간이 짧아 불만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전시는 이름이 요란한 데 비해 볼 거리가 없는데

여긴 확실한 작품들을 20위엔-2500원(학생은 5위엔)이면 봅니다.

다른 박물관에선 네덜란드 비디오 작가 30명의 전시가,

어느 화랑에서는 러시아의 top작가의 작품전이,

어디에선가에선 이태리 시에나의 사진전이 열려

만만치 않은 국제적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더군요

시간을 길게 잡고 전시만 봐도 되는 동네가 상해입니다.

팔대산인에 끌려 찾아간 동네에서 목적은 잊고

덜 대접 받는 다른 시대의 화가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상해를 가시면 꼭 박물관에 들르세요.

그리고 회화관과 도자관을 놓치지 마시길.

크지 않은 진품들 앞에서 그들의 세월을 한 번쯤 읽고 바라 보시길 바랍니다.

2005. 0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