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화랑 이야기 – 안녕 내사랑

안국동 로타리를 거쳐 동십자각까지 가는 길은, 높고 긴 돌담이 둘러처져 있습니다.

그안이 뭔지 아는 이가 드물지요
일제시대에는 식산은행 사택, 그이후론 미대사관 숙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감사하게도 나무의 소중함을 아는 미국 덕에 고스란히 수많은 고목들이 가득한 정원으로 남겨진 곳,

그리하여 남모르게 도심의 허파 노릇을 했던 곳.

쉽게 부숴지고 헐리는 서투른 개발일색의 동네 중심에서 반세기 이상 역사를 지녀온 귀한 곳입니다.
우리 나라 소유였다면 그 사이 당연 나무들 간단하게 베어내고 건물을 지었을텐데 말이죠.

심여화랑이 자리를 잘 잡았다고들 하는 건 무엇보다도 오래된 공원 같은 그 숲 덕입니다.

이층에 앉아 밖을 내다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제 할아버지 연배쯤의 버드나무며 단풍나무, 측백이며 은행나무들

높은 담장에 가려 일반인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숨겨진 센트럴 파크.

그 숲을 내다 보며 행복해 하는게 일과였는데
불과 몇 주 전부터 고목들이 베어져 나가고 이제 몇 그루 남지않은 상태입니다.

종일 전기톱으로 나무 베는 소리 , 그 소리 차마 들을 수 없어 지방 출장을 다녔습니다.

처음 사간동으로 옮겼을 무렵 담장가에 빙 둘러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아니 서울에 이런 울창함이 있다니..

흉물로 여겨지던 플라타너스가.이렇게 멋들어진 모습으로 나이들다니..

한국일보사 앞 란스튜디오 뒷길은, 지날 때마다 감탄과 놀라움으로 우러르며 플라타나스 군들에 완전히 빠졌었지요.

하늘을 우러르며 솟아있는 플라타나스군집으로 인해 언제나 앞이 아닌 위를 보며 행복에 겨운 걸음을 걷곤했습니다

어쩜 저리 높은 나무가 한국에 그것도 중심부에 있단 말인가 !오층 건물보다 웃자란

-스트레스 없이 맘 놓고 퍼진 가지,잘 자란 나무는 수종에 상관없이 기막히구나.

볼 때마다 감탄과 감사를 곁들였었습니다.

불과 얼마지 않아 민원이 들어왔다는 황당한 이유로 .

담장가의 고목들이 허리 높이로 죄다 베어졌습니다.

손 쓰지 못하고 한 나절 만에 그 절대적인 멋이 허물어져 내리는 걸 바라만 보는 참담함 ..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죄짓는 기분이었지요.

나무없는 뒷길은 마치 교도소 담장같이 삭막함만 남겨져버렸습니다.

화랑 앞 담장으론 우뚝 선 정정한 은행나무가 몇 그루 있어 창밖은 짓푸른 은행잎 가득했었죠.

이들역시 허리높이로 동강을 내더군요,

잘 자리잡은 나이든 나무 없애기를 가벼이 여기는 거 큰 죄라고 대신 반성했었지요

그러나 울창했던 은행나무에 가려 뵈지 않던 안쪽으로 늘어진 수양 버들이며 기품있는 자태의 나무들이 곧 위안을 주었습니다

얼마전 소유주가 삼성에서 대한항공으로 바뀌었다거니 문화공간이 된다거니하는 소문이 나더니

이삼주전부터 매일 아침을 여는 소리는 전기톱의 모터 소리였습니다

내다보면 낮은 키 나무부터 착착 베어져 나갔습니다.

설마 큰 나무들까지 베려고..!

하루 이틀 지날수록 허무하게 쓰러진 아람드리 나무들을 바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무참한 살육의 현장을 가슴아프게 지켜보며 거의 몇 그루 밖에 남지않아 황 폐해져가는 풍경을 보며

사유재산을 내세우기엔,더 소중한 자연 유산 – 너무도 키우기 힘든 백년 자란 나무들의 역사와 묻어 있는 세월이

사라져 가다니, 깊은 통증이었습니다.

문화를 내세우는 정부가 ,소리 질러 보여 주는 문화 말고
있는 아름다움을 지키는 게 더 앞서길 간절히 바라지요.

돈 들여 새로 짓고 만들고 하는 비용으로 이런 데 사서 공원으로 개방하면 좀 좋았겠느냔 말입니다.

물론 근처에 사는 사람으로선 지가가 상승하는 걸 반길 수도 있겠지요마는
그 찾기힘든 수목들의 아름다움, 그 깊은 숲속의 정감이 그런 것과 비길 수나 있겠습니다.

어디 비싼 조형물이 그런 위안을 줄 수 있을 지요
내일 아침까지 남아 있을 지 모르지만 사시사철 가장 정든 마지막 나무를 바라보며

몇몇 지인들과 남은 풍경과의 영결을 하려고 합니다.

백년 세월이 상업적인 건축에 밀려 자리를 내주고 있는 현장에서

매일매일 겪는 가슴앓이..지병이 되었습니다.

외국친구가 그러더군요.

30년 이상된 나무가 있으면 자기땅이라도 피해서 건물 지어야만 하는 법이 너희한테는 없느냐고요.

남의 재산권을 어찌 건드리랴 싶어 안타깝게 바라만 보던 제겐, 너무 늦은 얘기였지요.

그 숨겨진 공원에 창을 내 사무실이 아름답다고 즐기던 이웃은

더이상 나무 없어지는 거 바라볼 수가 없어 낮술했더군요.

톱질하는 인부가 단 한 그루 남기고 다 자르게 될 거라고 귀뜸을 했다네요.

일이 안잡혀 같이 삼청 공원으로 마실 가자며 오랜 나무를 지키지 못한 무력함과

그걸 소중한 가치로 여기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영결의 날 나무의 명복을 비는 아침입니다.

잘 견뎌와 준 세월을 위하여~!

늠름하게 펼쳐 준 기상과 기품에

계절마다 새로웠던 아름다움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

매일 가득했던 애정은 한없는 슬픔으로 바뀌어

이제 가버린 자리에 서서

그 인고의 세월을 잘 몰라보는 우리에게 용서를 ..

그 가치를 알고 지냈던 외국 주인들에게 미안함을 .

다시는 못볼 그대 잘난 모습 잊지 않으리.

아디오스.숨겨진 정원이여

2009. 0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