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화랑 이야기 – 밍글라바

밍글라바!

안녕하세요?하는 미얀마말입니다.

미얀마 글씨는 예쁜 디자인 같은 느낌을 줍니다.

미얀마는 아웅산 사건과 아직 버마라는 이름으로 더 깊이 각인이 된 나라지요.

90년대에 아시아 그림 시장에서 베트남의 도약이 눈 부셨습니다만

-베트남에 찾아온 르네상스로 표현 되었더랬지요-

점점 가격과 질에 있어서 만족을 주지 못하자

그 대체 시장으로 주목을 받는 곳이 미얀마입니다.

저 역시 10여년 이상을 해온 베트남 그림에

전과 같이 애정을 주지 못하고

새 파트너 -미얀마를 찾게 된 것이지요.

10여년간 베트남 미술의 약진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볼 정도 였는데요,

후유증이랄까,전염병이랄까

부자 반열에 오른 많은 인기 작가들에게 대량 생산병이 번져,

어디가나 그게 그거인 맥 빠지는 그림들 투성이라,찾아 가도 신이 나질 않았지요.

작가를 찾아가 좋은 그림을 만나면, 가격이나 이윤 상관없이

마음이 뿌듯한 즐거움이 가득 차오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힘이 다 빠져 버리는 극명한 대비를 보입니다.

요사이 베트남은 제게 그전처럼 가슴 벅찬 즐거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미얀마를 가려면 보통 태국을 거쳐 들어갑니다.

이번처럼 여러 곳을 들러 가기에 제일 좋은 기점은 싱가포르입니다.

스리랑카나 인도, 네팔 등지로 갈때 역시 싱가포르 여행사를 이용하면

한국 출발 대비, 놀랍도록 싼 패키지가 많습니다.

그곳 여행사와 시간을 잘 맞추면 예상보다 훨씬 저렴하게 다녀 올 곳이 많아집니다.

미얀마 그림의 특징은?

불교가 번성한 곳이라 불교적 색채가 강합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터라 수채화가 뛰어나구요.-영국의 수채화는 세계적이지요.

고를 그림은?

불교적 색채나 지역적 특성이 너무 강한 거 빼고 ….

또한 수채화에 대한 인식이, 덤으로 받는 그림 정도로 여기니

수채화 보다는 유화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미얀마에서 가장 이름이 난, 살아 있는 화가는 우룬쪼에입니다.

자기가 직접 화랑을 하고 있고, 많이들 찾고, 온 가족이 그림을 그리는 가장 이름이 높은

여유로운 화가지요.

그러나 이름이 있으나 없으나, 우리에게는 다 낯설은 작가들이라,

이름에 구애 받지 않고 바라 본다면 그다지 매력이 없는 그림입니다.

이름 믿고 다작(多作)한 강한 냄새 …!

그 전에는 좋았을 법도 싶습니다만.

다작 뒤에는 이미 얻은 이름만 보고 사는 구매 계층이 있기 마련이고,

저까지 덩달아 그 무리에 수를 보태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유명 작가를 떠나 마침 전시 중인

미술협회를 찾아가 20여명의 화가들과 만났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성씨가 없습니다. 단지 이름만 있지요.

어른인지 젊은인지를 알려 주는 호칭으로 남자 선생님격의 “우”를 ,

젊은이에게 “꼬’를 붙입니다.

우룬쪼에 역시 젊어서는 쪼에라는 이름으로 불렸을텐데

나이 들어 우 라는 존칭어가 붙은 거지요.

아들이 같은 이름이라면 꼬쪼에라고 부른답니다.

작가 공부하느라 이름 외우면서, 어이하여 우씨가 판을 치나 했더니

죄다 선생님 격의 원로 화가들이라 이름 앞에 ‘우’를 붙인 거라는 걸

두 번째 방문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스무 명의 작가들 이름 외우기가 난감해서 사진 한 방 찍고

사진에 나온 순서로 이름을 쓴 후 몇 번 외우고 다시 얼굴 확인 하고 나니

10명 이름은 알겠더군요.

그들은 빙 둘러 디지탈 카메라에 나오는 자기 모습들을 보며 신기해 합니다.

삣쪼, 통쉐, 똥우, 밍이, 니엔찬수..이런 이름들을 친숙하게 받아 들이려면

내심 10번은 더 와야 할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름을 불러 가며 아는 체 합니다.

이름이 불린 화가들은 아주 반가운 얼굴로, 초등학생이 선생님한테 호출 당한 듯 손을 듭니다.

“제 이름은 sunny! sun shine 할 때 sunny.잊지 말아요. ”

반복 학습을 시킵니다.

방문 인사겸 해서 돌린 차갑게 한 콜라는 큰 선물이었나 봅니다.

저야 레몬즙을 짜 넣은 파파야 쥬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실 만큼 좋아해서

그걸 사려고 했는데, 이들에겐 콜라가 더 큰 대접이라는군요.

덜 알려진 젊은 작가들이 신선하고 좋더라구요.

그러나 작품들이 너무 자기 지역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좀더 자유로워야 하는데..

이들에게 좀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미얀마 전체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초췌한 화가들을 뒤로 하고 호텔로 갑니다.

여태껏의 외국여행에서 양곤에서 묵은 호텔-Strand hotel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이정웅 선생 작품에 푹 빠진 빅바이어에게 미얀마 간다고 했더니

자기 호텔- 전설적 호텔 스트랜드에서 묵기를 권하더군요.

첫 날은 공짜, 둘째 날부터는 특별가.

공짜에 눈이 어두워 yes했는데요.

공항에 피켓 들고 서 있는 기사가, 글쎄 아주 질 좋은 실크로 된 론지를 입었더군요.

(론지란 미얀마 전통의상으로 치마처럼 둘러 걸치는 옷을 말합니다.)

미얀마를 한 번만 다녀도 금방 눈에 들어 오는 건

그야말로 다 썩어 빠진 차량들입니다.

어디서나 폐차가 되어도 지난 세대에 되었어야 할 차들이

새카만 매연을 뿜으며 힘겹게 달리고 있지요

그런데 마중 나온 차가 볼보라니.

심상찮은 조짐이었지요.

호텔에 도착하니 영화배우 같은 총지배인 martin이 super VIP가 온 걸 환영한다며

칵테일 서비스.

천정에서는 앤틱스러운 선풍기가 돌고 있고 두 명의 스탭이 탁 들러 붙어

방 안에 들어와 온갖 시중을 다해주고..

시중도 받아 본 사람이나 받는 것인지 , 제겐 아주 고역이었습니다.

게다가 방이 혼자 자기엔 너무 넓더라구요.

보통 묵던 곳에 비해 4배는 더 넓은 듯..

침대 위에는 꽃으로 엮은 목걸이가 놓여 있고,

화장실에도 향기가 진동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질 않나

미끄러질까봐 고무로 바닥을 덧댄 슬리퍼까지.

즐겁기보다는 두려워지더군요.

으아, 이거 하루에 얼마나 할까?

세계 160개 호텔을 매니지한다는 싱가포르 바이어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우리 호텔은 40~50개 객실을 갖고 있는게 대부분인데

하루 밤에 US$1,000한다던…

불에 덴 듯 호텔 테리프를 보니 일박에 600$이더군요.

하루 공짜 OK!

특가? 50%해도 300$…

아직 어두우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하는 시간임에도 세상 깜깜해지는 건 잠깐이더군요.

이를 어쩌나!

한국 대사관으로 향합니다.

붉은 길죽한 깃발들이 휘날리는 집.

그 집안에 갇혀 있는 아웅산 수지.

이 역사적인 현장을 지나 멀지 않은 곳에 한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마침 그곳 양곤의 길거리마다 korea trade show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뭐가 팔릴까?

여간 궁색해 보이지 않는 나라라 팔아 봤댔자 얼마나 될까 자못 걱정이 되더군요.

“무슨 한국 행사가 있나요?”

미얀마는 천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라, 수출은 거의 1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답니다.

석유,가스, 나무-티크,수산물..

한류 바람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져서, 기업들 진출하기 좋게

코트라와 대사관이 기획한 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 열기 전부터 문 닫고 나서도 한참까지 사람들이 몰려 들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나요.

소개 받은 이경우 대사 댁에 가서 영국, 프랑스, 미국, 요르단 등지에서

생활하며 모은 많은 컬랙션을 보았습니다.

세상도 좁아라. 그 사모님은 제가 좋아 하는 선배의 가장 친한 친구지 뭡니까.

덕분에 갑자기 그 선배인 양 가까워졌지요.

그림과 조각, 은제품들 상아로 만든 수공예품등은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가득합니다.

어느 누굴 초대해도 얘기거리가 많고, 보여 줄만한 품위가 있는 관저.

우리 관저들이 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지 작가와 컬랙터로서 친분이 두터운 대사는 정말 소망스러운 존재입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을 뵈면 금방 친구같이 여겨집니다.

“저.. 좀, 구출해 주세요.”

편히 여겨져 ,’장사하기도 전에 호텔비 내다 망할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립니다.

“어디서 묵는데요?

아니, 스트렌드에도 한국사람이 가나?”

금방 알아 들은 새 선배(?)는 기꺼이 호텔로 동반해줘,

총지배인에게 이 친한 친구를 우리 집에서 재워주고 싶다는 동앗줄을 던져줍니다.

마음 약한 후배..차마 곧바로 밧줄을 받아 쥐지 못하고

하루만 자구요. 하고 말았지요.

그리하여 하루 공짜, 그리고 아주 아주 가슴 아픈 하루치 숙박료를 내면서

통증을 느꼈던 호텔…스트렌드였습니다.

스트렌드에서 나와 다음 날은 트레이드호텔에서 묵습니다.

하루 50$. 싸기도 하지.

이날은 미얀마의 명절인 full moon day- 11월에 추석이라니!-였습니다.

저녁이 되자 길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아까 차 타고 가다 골동품 가게에 걸린 그림을 다시 찾아 보겠다고,

가는 방향을 잃고 인파에 휩쓸려가며 오락가락 하는데

누군가가 “be careful!”하며 팔목을 끌었습니다.

신호등이라곤 중심부에 인사 삼아 몇 개 밖에 없으니

눈 짐작으로 건너고 있던 제가 위험해 보였나 봅니다.

영어 발음으로 보아 유학을 했겠다 싶은 청년이었어요.

가로등도 몇 개 없어 그저 어둑한 가운데 말동무가 되어 걷습니다.

이름은 산린,스위스에서 공부했고,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지금은 2개월 공백으로

자기 나라에 돌아와 있는데, 추석날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는 때라

애들 주려고 물건을 산 거라며 한 보따리 봉투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걸어 가다 어려워뵈는 애를 불러 봉투 하나씩을 건네 주더군요.

아 이렇게 보시하는 방법이 있구나.

불교식인가 보다 지레 짐작을 합니다.

옷차림에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으로 보인다며

다음에 올 때마다 헌 옷을 가져와 자기 나라 어려운 애들에게 주지 않겠느냐고 부탁을 합니다.

뭐든지 가져 오면 소중한 물건이 되는 빈한한 나라.

북한 다음으로 못 살 것 같은 -리더 부재의 나라…

길거리에 서서 얼마든지 그러겠노라 대답합니다.

우리네 쓰레기통의 폐기물도 여기선 얼마든지 대접 받을 수 있겠다싶은,

가슴 아프게 못사는 나라니까요.

소중함을 아는 소중함.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뒤돌아 보지 않고 버렸고, 잃어버린 가치 중 으뜸가는것.

작은 것의 소중함

작은 것의 재활용..

우리의 쓰레기를- 큰 가치로 효용을 되찾아 주는 일.

여분의 힘으로 해 줄 수 있지요.

여러 분도, 저도..요

못사는 나라에 가서 깨닫는, 작은 소중함에의 그리움이 있습니다.

미제병을 깨끗히 닦아 용도에 맞게 반찬통, 아님 양념통으로 놓고 지냈던

불과 얼마 전의 우리가

똑같은 가치로 예쁜 병을 귀하게 대하는 그들을 보며 지나간 시간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다들 귀찮아 버리고, 딱 맞는 그 용도의 물건들을 지니며 살고 있는 우리가

그때보다 훨씬 잘 사는 것인가?

물건을 돌려 쓸 줄 아는 지혜와 재미도 괜찮은 거 아닌가?

이걸 꼭 못산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물건에 치어 지내는 이즈막의 생활이,

괜시리 복에 겨운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지난 번 가서 몇 점 안 가져 온 쪼우민을 찾아 비행기로 만달레이로 갑니다.

만달레이를 비행기로 간다고 했더니, 산린이 차로 가면 훨씬 싸고 재미있다며

자기가 가이드 해주겠다고 자청한 어제입니다.

양곤에서 만달레이까지 차로 14시간 걸리는데..

그것도 다 망가진 차로 어찌 가겠나!

길 위로 다니는 택시들의 상태는 에어컨만 달리면 최고급,

문짝이 다 닫히면 중간 이상, 나머지는 창문 활짝 열린 채-

매연을 바가지로 마셔야 하는 차들 일색이니까요.

친구차 렌트한다는데 택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서 항복했지요.

쪼우민은 만달레이 미술대학을 나온 전업 화가입니다.

미얀마의 통신 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화는 커녕 주소조차 무슨 사원 옆 ..아니면, 우체국에서 두번 째 집식이니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미얀마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만달레이 미술대학을 가 봅니다.

아후~! 이건 한참 전 시골의 초등학교나,

아님 부산 피난 시절에 있었다는 임시 학교 수준입니다.

빈 교실에 탁자 하나 놓여 있거나, 진흙더미가 쌓여 있어

저긴 회화과 저긴 조각과 식으로 유추할 뿐입니다.

마당에 놓여 있는 조각 하나가 그나마 미술학교의 냄새를 풍길 뿐

횡뎅그렁한 곳이었습니다.

미얀마작가는 누구 밑에서 그렸다는 걸 경력으로 얘기하고

대학 졸업으로 얘기되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도제식으로 어느 작가 아래서 그렸다는 걸 내세웁니다.

가장 제자가 많은 선생님이 우룬쪼에입니다.

쪼우민은 밍군에서 삽니다.

밍군을 가려면 배를 타야 하지요.

호텔에서 제가 외국인이니 로컬들 타는 배 말고 혼자 타고 가길 권합니다.

너무 복잡하고 더럽다는군요.

몇 십명이 탈 수 있는 배를 , 택시 기사가 덤처럼 따라 붙어 같이 탑니다.

한 시간 남짓 갑판 위 의자에 앉아 보슬비를 맞으며, 이라와디 강을 따라 갑니다.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한 제게, 가이드의 존재는 성가실 뿐입니다만

위험하다며 계속 말을 붙입니다.

지저분한 론지를 두르고 있는 -영어를 하는 기사 묘아웅은, 50대 후반의 양곤대학 출신입니다.

아내는 불어와 영어를 잘해 역시 가이드를 한다는데

웃는 입안이 피빛이라 깜짝 놀랐더니 씹는 담배 때문이라는군요.

이곳에는 씹는 담배와 엽연초 두 종류이니다.

잎으로 싼 담배는 태울 때 냄새가 보통 담배에 비해 구수합니다.

나뭇잎에다 두르르 담배를 말아 놓은 모습니다.

100원 이면 10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사다 선물하면 재미 있겠다 싶었으나 혹시 대마초로 오해 받을까 두려워 그만둡니다.

부부가 다 대학을 나와 외국어를 하면서도

별 것 아닌 수입에 목을 매고

애매모호할 때마다 웃음으로 때우는 묘아웅.

담배를 입으로 가져 갈 때마다 거슬리는- 때 낀 손톱,

때에 쪄 든 론지를 입은 누추한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짓습니다.

국민을 이렇게 우습게 만드는 나라라니.

인텔리가 인텔리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이 깨끗하게 살 수 있는 권리

남들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아야 할 권리,

그런 거는 보장해 줘야 하지 않을까.

10여년 전의 베트남과 확연히 비교가 됩니다.

참 못살고 있는데 괜찮은 나라구나 하는 믿어지는 곳이었거든요.베트남은.

여긴 믿음 대신 한숨이 자리를 합니다.

그림보다는 재료가 더 소중한-물자 귀한 시절을 보내고 있어

어떤 그림은 종이 양면에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지방 작가들일수록 더하죠.

다행히도 쪼우민은 인기작가입니다.

어두워지려고 해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집 사정 때문에 -뛰 듯 찾아 갔지요.

눈이 다 비슷한 것인지, 제가 찾아간 이후 호주 화랑에서 작품전 제의가 있어

70점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가격은 전에 비해 2.5배.

싸고 좋은 작가를 어렵사리 찾아 갔더니 다른 곳에서 가격을 높여 놓았더군요.

다시 한 숨.이 가격이면 양곤에서 잘 나가는 작가와 다를 바 없는데…

포기하자니 온 걸음이 아깝고, 사자니 성에 안차고..

진퇴양난.

에이, 배로 유람한 셈 치자. 비행기 삯이며 호텔비며 더러워도 참고 온 교통편이며..

본전 생각이 난 곳.

작가가 약속한 내년 2월로 미루고 만달레이를 출발,

그동안 사모은 그림 꾸러미를 끼고 제일 아름답다는 호수 인레이로 갑니다.

쪼우민의 그림을 보면 조용한 빗줄기 속에서 흐르던 이라와디강의 물살이 떠오릅니다.

작가가 제일 좋아 한다던 여인<누드>와 함께요.

2004.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