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화랑 이야기 – 미얀마

추석 연휴를 잘 보내셨는지요?

베트남의 미술이 내용과 가격 면에서 눈부신 성장을 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

동양적인 정서와 색채로 아시아 시장에 하나 둘 선을 보이는 중인

–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미얀마를 다녀 왔습니다.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라오스,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남 아시아 최대의 국가입니다.

우리에겐 버마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곳.

고동색이나 붉은 색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많은 나라.

아웅산 폭발 사고로 얼룩진 기억을 가진 곳.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도 못사는 나라.

아웅산 수지라는 인물을 떠올리는 곳…이런 정도의 감으로 찾은 곳입니다.

버마는 130개가 넘는 종족 중 최다 종족명이랍니다.

모든 민족을 아우를 수 있는 말 ‘전쟁 끝’의 뜻인 미얀마로 바꾸게 됩니다.

아웅산은 버마의 온 국민이 추앙하는 장군이름이고

아웅산 수지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영국에서 살다

-멋모르고 돌아와 투사의 자리에 서게된-

시대가 만들어 낸 영웅의 딸입니다.

영국의 식민지 였던 나라에 영국인의 아내로 살다가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인간적으로 참 안된 여인이 수지 입니다.

남한의 8배가 넘는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천연 자원이 많은 곳.

불교 신자가 대다수인 미얀마의 수도는 양곤입니다.

무성한 열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자연적인 공원의 입지를 잘 갖춘 곳입니다.

동양의 진주로 불렸던 곳.

1960년대에는 우리의 8배가 되는 국민소득을 자랑했던 곳.

그 잠깐의 영화에 취해

완전 고용을 보장하며 자립을 내세워

아직 바탕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상으로 돌아서,

소아병적인 폐쇄정권으로 인해 몇십년째 최빈국으로 살아 가는 곳.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며

그곳의 몇 군데-바간, 밍군, 만달레이와 양군을 돌아 다녔습니다.

불탑들의 고장- 바간

양군에서 비행기로 한시간 20분 서북쪽에 있습니다.

탑이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위로 솟은 건축물을 가리켜 말합니다.

우리네 탑과는 크기와 모양이 사뭇 다르더군요.

우리는 위로 솟기만 했지 옆으로 퍼지진 않았는데

미얀마엔 크고도 넓게 -튼실한 몸집으로 안정적으로 앉아 있습니다.

좌우 대칭뿐 아니라 전후 대칭이 되는

둥글거나 네모거나 아니면 사방으로 완벽 대칭을 이루는 타워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탑들의 실루엣은, 대칭의 미가 뛰어났던 문신 선생의 작품들을 떠올립니다

완벽한 구도의 아름다움으로 넓디 넓은 평원에 솟아 있는 불탑들.

석양 무렵

지천으로 깔린 불탑들을 바라보며

높은 파고다 위 테라스에 서 있노라면

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함께

세계의 신기로 꼽는 지 끄덕이게 됩니다.

수천 개에 달하는
황금빛 또는 희거나 붉은 빛으로

세월의 무게를 가득 담은 탑들이

넓디 넓은 들판 위에
전혀 손상 되지 않은 자연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곳.

전체적인 톤은 붉은 황토빛으로 남아 있는-바간입니다.

그곳에서 말 수레를 타고 호텔로 돌아 오며

‘이런 모습으로 영원하라’ 주문을 외웠습니다.

바간을 가신다면 부디 말수레를 타십시요.

그것도 석양 무렵에

그중 높은 파고다 위에 올라 파노라믹한 바간을 보신 후

맨발로 천천히 내려와 수레에 오르면

지는 해와 더불어 시간 속으로 같이 저무는 기분이 될 것 입니다.

만달레이는 바로 전 왕조가 있던 곳입니다.

미얀마 마지막 왕조인
공파웅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지요.

현재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이며

버마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데요

정방형으로 둘러 싼 해자 위에 솟은 성벽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밍군을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이라와디강 서쪽 상류로 1시간 반을
올라갑니다.

양안으로 즐비한 수상 가옥과 멀리 보이는 풍경은 한폭 그림입니다.

보타파야왕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파고다를 조성하려고 했으나
그 작업이 끝나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는데요.

과욕의 결과물로 남은 허물어져 가는
이 인상적인 유적지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수행되지 못한 계획 중 일부분에 불과한 밍군종
– 소리가 나는 종들 중 세계에서 가장 큰 종으로 90톤 –
과 끝마치지 못한 거대한 탑이 크기에 대한 덧없는, 이루지 못한 욕망과 함께 낡아 가고 있었지요.

맨발이 정장인 나라

사원과 파고다를 갈 때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며칠 다녔더니

웬만한 땅 밟는 거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거칠수록 시원하게 느껴지니…,발의 감각이 달라져 버렸어요.

그곳을 다니며 몇몇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잘 나가는 작가들을 만나면서 어리다고 느끼는 건 상대적이겠지요.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괜찮은 작가들이 친구같다고 여겼는데

이제 미얀마에선 다들 한참 동생뻘 같더라구요.

세월이 흘렀더군요.

작가에 대한 탐험을 앞으로 계속 되겠지요.

심여화랑이 베트남에서 미얀마 전문이 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미얀마를 경제로 평가하면 별 거 아니겠지만

그들의 작품-많지는 않습니다-을 대하시면 생각이 달라지리라 봅니다.

며칠 후면 심여 화랑에서 틀 속에 들어 있는 깜짝 놀랄 가격대의

괜찮은 작품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뵙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seeing is believing!

심여화랑 성은경 드림.

2004.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