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화랑 이야기 – 먼 크로아티아

처음 유럽 여행을 한 건 1987년입니다.

영국에서 만났던- 쟈그레브에서 왔다는 비슷한 또래의 청년은,

자기 나라의 문화에 대해 자랑스러워했으나 웬지 힘이 없어 보였지요.

나라가 흩어진 탓이리라 짐작을 하면서 안돼했는데 나중에는 호기심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유고라는 나라는, 그 청년의 힘 없고 슬퍼 보이는 얼굴과

눈이 반짝이며 강조한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라는 말로 되뇌어지곤 했습니다.

그 중 한 부분인 크로아티아.

그래서인지 그곳이 일찌감치부터 가고 싶었습니다.

다니면서 귀동냥한 얘기만으로도 너무 이름다운 나라.. 갈 만한 곳이었죠.

게다가 그곳에 가면 우리에게 덜 알려진 좋은 그림이 많으리라 ..

우리한테 멀리 떨어진 나라를 경제적으로 가는 방법 하나.

그 근처에 있는- 가장 빈번히 오가는 나라의 여행사에 단체에 끼어 가면 되지요.

크로아티아를 가장 잘 가는 나라. 이태리, 프랑스, 영국…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는? 이태리.

이태리의 인터넷을 통해 몇십만원의 돈으로6~7박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지요.

그래서 일단 로마로.

아~!, 그런데 로마에 닿아서야 여권의 만기가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걸 알았습니다.

여권을 연장해야 갈 수 있다는 말에 크로아티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곳까지 가서 그냥 돌아 올 수 없어 갈 곳을 이태리로 바꿨습니다.

렌트카는 유럽을 가장 싸게 여행하는 방법이지요.

이태리에서 차를 빌리면 같은 EU국가끼리는 괜찮은데,동유럽은 갈 수 없다네요.

이번은 어차피 못가는구나…

크로아티아, 다음에 보자꾸나.

워낙 소형차가 주류인 이태리는

한 사람만 타도 꽉 차는 초소형부터 소형 선택의 폭이 아주 넓습니다.

거의 모든 차가 수동이구요.

하루에 3만원쯤 되는 비용으로 1300cc피아트를 빌렸습니다.

이태리 전체 지도 하나 들고 피아트가 발이 되는 여행.

이럴 줄 알았으면 이태리 친구들 주소나 들고 올 걸.

싱가포르에 놓고 온 휴대폰만 있어도 전화연락은 될텐데…

렌트카의 빈 자리를 보면 누구든 같이 올 걸.

여러 생각들이 후회스러웠으나 어찌하겠습니까?

눈에 닿는 곳에 가고 맘에 드는 곳에서 먹고 경치 좋은 데서 자기로…

로마에서 시작해 슬로베니아 국경 근처까지 가서

그 동네 냄새라도 맡아야겠다는 여정으로 잡고는 출발했지요.

로마-움브리아-에밀리아로마냐-토스카나-롬바르디아-베네토-트란티노 지방의 일정입니다.

로마에서 한 시간쯤 북서쪽으로 가면 오르비에토가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 산지로 유명한 곳이지요. 지방명 중

친숙한 와인 산지가 많아 반갑지요. 오르비에토를 비롯하여 몬테 풀치아노,몬탈치노, 발포리첼라..

이태리의 풍경 중 참 이국적으로 다가 오는 건 산 위쪽에 지어진 옛집들입니다.

전쟁에 대비 하기 좋은 지세로 이루어진 건축특징이리라 짐작해 봅니다.

고색 창연한 기운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불러 일으키죠.

그 산 위로 길을 오르다보면 왜 이태리에선 소형차를 탈 수 밖에 없나 이해가 됩니다.

몇 백년, 어쩌면 천 년도 더 된 옛 골목길로 그냥 차들이 다니거든요.

차가 크면 참 곤란할 길들 투성이더라구요.

아하, 그래서 덩치 큰 이들이 코딱지만한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타니는구나.

자연스럽게 이해를 합니다.

잠깐씩 주차를 합니다.

나그네 답게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킁킁 거릴 데가 많기때문이지요.

한도 없는 성당, 연도를 따지기에 다들 너무 많이 먹은 나이의 건물들, 길들 ..

지금이 언젠가..?

여기가 어딘가..?

나그네는 서성거립니다.

세월을 잊기엔 충분한 옛 풍광 속을,

현재의 사람들이 살아 가고 있는, 겪어보지 못한 대비감을 몸으로 느끼면서요.

지도에는 경치 좋은 길은 초록색으로 그어져 있어,

가능하면 고속도로를 피해 경치 좋은 국도로만 다닙니다.

어둑해지고, 인적이 드문 산길.

서양에서 3대 미식으로 꼽는 캐비어, 후아그라, 트러플 중 저는 트러플을 첫째로 꼽습니다.

향에 있어 우리 송이 버섯보다 한 수 위로 봅니다.

마침 간 날 파브로-움브리아 지방-에서 송로버섯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지도에 별표를 해가며 열심히 찾아 갔지요.

시골의 컨밴션 센타에서 열리는 버섯 축제장.

여러 부스를 다니며 흰색 송로 버섯 만져보고 검은 트러플도 냄새 맡고-정말 향기롭더군요.

아기 주먹만한 송로 버섯이 300유로니까 엄두를 못내고 ,만져본 값 하느라

흰 트러플 오일만 샀지요. 화이트 트러플은 블랙보다 더 향기롭지요.

아침마다 빵에 찍어 먹어야지.

이 축제장은 버섯보다는, 많은 지역 정보를 담은 몇몇 지도를 얻게 되어 반가웠어요.

그 지도에 나온 산장을 찾아 국립 공원으로 향합니다.

저는 호텔보다는 민박하는 농가나 수도원 혹은 산장을 선호합니다.

어두워지는 산길로 가다 만난 ,숲에 묻힌 -겨울이라 손님이라곤 없는 산장은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구세주 같았지요.

차가운 날씨임에도 나무 냄새가 좋아 차창을 열고 다녔더니 몸이 얼어

덜덜 떨면서 들어 갔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걸로 뵈는 남녀 셋이 앉아 와인을 마시던 중이었습니다.

“방 있나요?”

낯선 동양인을 쳐다 보더니 한참 후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와인 한 잔 할래요?”

쉽게 OK 사인을 보내 동석합니다.

아직 불을 지피지 않은 방 덕에 식당에서 떨리는 몸을 녹입니다.

처음 와서 자겠다는 동양인에게 그들은 친근하고도 융숭한 대접을 해줍니다.

9시면 우리 다 집으로 가고 혼자 남는데 잘 수 있겠냐데요.

제가 현지인처럼 잘하는 이태리어가 있습니다.

“노~프로블래마!”

방이 대여섯이 되는 산장이 온통 제 빌라가 되는 행운이~!

금방 친숙해진 그들은 제가 고른 2층 방에 라지에터를 켜 주고

추울테니 벽난로에 불을 지펴 주겠다며 한아름 장작을 지핍니다.

그리곤 금새 훈훈해지는 거실로 먹거리를 들고 옵니다.

여러 병의 오르비에토 와인과 토스카나 와인 중 어느 걸 고를래 하기에

이 동네 걸 마시고 싶지만 토스카나가 좋아 그러면서 한 병을 고르자

장작을 지피던 친구가 “와인 좋아하는구나”면서 반가와 하더군요.

알고 보니 이 친구가 요리사며 소믈리에였어요.

제가 고른 와인이 소믈리에가 제일 좋아하는 거라나요.

뽑기를 잘한 덕에 요리사가 신이 나서 실력을 발휘한

몇 가지 접시를 덤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제 가방에서 나온 흰색 트러플 오일은 저를 엄청난 미식가로 만들어 주었지요.하하!

담배를 손에서 떼지 못하던 선한 눈매의 뚱뚱한 우크라이나 여인,

영어 못한다던 기실 그중 제일 말을 잘 하던 글 쓴다는 친구와

단정하게 서빙하던 소믈리에와 같이 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9시면 간다던 그들은 저만 놓고 가기가 미안한 지 한참을 더 있다가

드디어는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 하라며 명함을 놓고 갑니다.

방값외엔 모든 건 한국 친구를 환영하는 대접이라며

여태 위험한 일은 없었다며 안심을 시키고 사라졌지요.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그들이 사라진 후에도 남아 훈훈한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개 짖는 소리에 깨니, 아래층에 인기척이 있는 듯합니다.

봉조르노~! 어제 일행을 생각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전혀 다른 사람들로 교대가 되었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인사나 제대로 해 둘걸.

싼 값에 좋은 잠자리와 융숭한 산장에서의 숙박은 유혹이었으나

미련을 떨치고 간단한 토스트와 카푸치노를 마시곤 짐을 싣고 다시 출발합니다.

역시 그린칼라의 길을 따라 유서 깊은 대학이 있는 페루쟈로.

가는 농촌길은 안정된 선진국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안정된 나라는 자연도 풍요로운 느낌이 듭니다.

길을 묻거나, 식당을 찾아 갈 때 물어 보면 다들 하나같이 친절합니다.

페루쟈에는 다빈치의 조각이 있는 남들이 잘 모르는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찾아 가니 마침 보수중.

한국에 비해 제일 보람차게 사 마시는 건 오렌지쥬스입니다.

몇 개의 오렌지로부터 나오는 한 잔의 즙은 만족스럽지요.

다시 녹색 표시된 호수길-트라시모 호수를 따라 산길로 갑니다.

토스카나 지방으로가는 길이지요.

시에나의 ‘귀도’라는 파스타가 맛있던 식당이 그리웠으나

새로운 곳을 겪어 보기위해 과감히 포기합니다.

몬테풀치아노도 들러 그 제목의 와인을 마셔야지 했는데

혼자 한 병 무리지 싶어 숏컷으로 일정을 바꿉니다.

가려고 정한 길이 산길을 거쳐 피사 찍고 루카로 가는 것이니 낮 시간을 아껴야 했지요.

할 수없이 고속도로로.

그런데 놀랍게도 아름다운 길이 펼쳐집니다.

토스카나, 움브리아 리구리아 세 주에 걸쳐 있는 트라시메노 호수가 보이는고속도로는 환상적이었습니다 .

어찌 이리 금방 저녁이 될까.

피사의 기울어져 가는 탑을 차 안에서 바라만 보고-바람이 너무 강하더라구요.

루카로 갑니다.

고대 분위기 성 안으로 들어섭니다.

중세의 건물들 사이로 구불구불 난 길을 차를 몰고 가는 기분이 괜찮더군요.

푸치니의 생가 앞쪽에 피콜로 푸치니라는 호텔에 가려 했는데 방이 없다는군요.

밖으로 나와 대하는 웅장한 성벽 은 늦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성벽이 보이는 곳에 90은 된 듯한 할아버지가 프론트를 지키는 호텔에서 묵기로 합니다.

2004.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