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여화랑 – 숨겨진 보물 찾기

베트남이 미술로 다가온 것은 1991년 홍콩에서 있었던 한 전시회였습니다.

그 화랑의 큐레이터로 일하던 대만 친구가 볼 만한 전시라고 청해서,
우연찮게 만난 베트남의 작가 열다섯명의 작품은,동서양의 정서가 알맞게 조화를 이룬
-그러면서도 개성이 빛나는 좋은 전시였습니다.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갖게 되는 환한 설레임과 여태 접하지 못한 자연스러운 색감,머뭇거리면서도 자신감이 있는 선, 창의적 표현들이 하나하나 놀라웠습니다.

사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작품들, 예상에 비해 아주 높은 가격이라 눈요기만 하였습니다.

‘문만 열리면 찾아 가리라’ 작품과 작가들을 대신 가슴에 넣었습니다.

그후 베니스 비엔날레를 갔다가 이해하기 힘든 그림들에 실망을 하고는 그리스 터키를 도는 유람선을 탔었지요.

그 배에서 알게 된 필리핀 부부가, 그림을 좋아 한다면 찾아가야만 하는 나라로 스페인과 베트남을 꼽았습니다.

얼마나 베트남 그림이 좋은 지 힘주어 말하던 필리핀의 국제 경영 대학원장인 알폰소 부부와의 시간은흥미진진했습니다.

반갑고 신기해서 다시 한 번 새겼습니다.

베트남 그림…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열려라 참깨!” 주문처럼 문이 열리고 달려 갔습니다.

물론 첫인상이야 남루와 때에 절은 가난이었지요.

저녁 무렵 도착한 베트남,

침침한 형광등 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 방 하나로 한 집안 스케치가 다 잡히는- 한 팔 너비의 좁고 긴 집들을 연속적으로 지나갔지요.

지나치는 많은 장면들이 참 가난하나 따뜻해보였습니다.

아마 우리네도 지난 시절 거쳐온 모습이라서였을 것입니다.

지나간 어느 시절이 아직껏 간직된 듯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친근함이었습니다.

홍콩전시때 도록을 틈나면 보면서 정이 든 ,그 나라의 박수근으로 보이는 부이수안파이.

그의 작품 하나만 구하자고 찾아간 베트남,

놀랍게도 처음 방문한 호치밍에 있는 호텔 옆 화랑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움은 천문학적인 가격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어찌 이리 비쌀 수가!

너무 많은 액수가 아닐까 싶었던 달러였음에도 반도 못미치는 가격이니..

화랑 주인은 그는 제일 유명한 작가고, 죽었고, 그 작품이 그중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강조합니다.

갑자기 가난해진 주머니를 헤아려 이번에 파이는 포기하고 그림 구경이나 하자고 하노이로 향했습니다.

하노이 미술 박물관에서 그림 구경을 했습니다.

작가들 이름과 작품이 맞아 떨어질 때까지 서너 시간 돌고 돌았지요.

미술관에서 일하는 듯한 여자가 다가와 그림 좋아하느냐고 말을 건넵니다.

좋아한다고, 특히 파이를 좋아 한다고, 그런데 왜 그리 비싸냐고 했더니 사고 싶냐고 되묻더군요.

친구 아버지가 많이 갖고 계신데 원하면 데려 가겠노라고..

반갑게 응락하고 그녀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 탔습니다.

몇 개의 호수를 끼고 돌아 가는데 참 알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어쩜 이리 익숙한 동네일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뜻하지 않은 안내인, 미술관에서 일하는 우엣은 저를 어느 오래된 좁은 골목 안에 내려주었습니다.

낡은 문을 열고 들어 가니 그 집 안에는 벽 아래 위로 하나 가득,

조금 전 미술관에서 외웠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벽 가득 걸려 있었습니다.

물론 파이도 많았구요.

호치밍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가격의 작품들이었습니다.

돈은 얼마 안되고 다 사야겠기에,있지도 않은

친구에게 돈을 빌리겠노라며 일단 찜을 했지요.

그리곤 대사관을 찾아가 대사님을 만나겠노라 했는데 부재중이라, 일단 한국계 회사로 선회 제일 큰 회사 주소를 받아 들고 시클로를 탔습니다. 이 주소로!

대표를 만나겠노라는 한국여자의 방문에 현지 채용인들은 공손하고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한국 여인의 기습적인 방문에 어안이 벙벙한 회사 대표입니다.

그림을 사려는데 돈이 모자라 빌리러 왔노라는 말에 입을 딱 벌립니다.

저를 아십니까?

“아뇨.

혹시 박수근이란 작가 아시나요?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박수근이 있습니다.

우리도 어려웠던 시절 누가 박수근 그림 쳐다나 봤나요?

여유 있던 미국인 들이 푼돈으로 사서 지금 우리한테 거액으로 되팔고 있잖습니까.

여기도 제 보기에 박수근이 있습니다. 이들이 여유가 안돼 지나칠 때 우리가 적은 돈으로 사서 즐기다가 이들이 잘 사는 시절 되팔면 이게 정말 장사 아닙니까. 문화적인 장사가 좋은 장사지요.

이익을 남기는 장사지만 이건 문화의 질을 높이는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장사입니다.

돈 그냥 빌려 달라는 게 아니고 제가 한국 계좌에 넣어 드릴테니, 확인 하신 후 제할 거 다 제하시고 제게 주시면 좋은 작품 모두 사갈 수 있습니다.”

뜬금 없는 방문객의 사설을 반항 못하고 듣던 대표분께서 조용히 되묻더군요.

“그런 걸 뭐라고 하는 지 아십니까?

….

그건 외환 거래 상 가장 법적으로 금하는 환치기입니다. 불법이라 안됩니다.

나는 명색이 이곳 대표지만 월급장이 입니다.큰돈은 없으니..얼마가 필요하십니까?”

그러면서 믿을 수 없게도 그 분은 개인적인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물론 사온 그림들은 단박에 다 나가고 ,다시 갔으나 더 이상 그런 숨은 보물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기억했던 이름의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 문화에 익숙해지고, 그들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매달려 이 골목 저골목을 누비면서 친구의나라로서 베트남이 점점 가깝게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시클로와 오토바이 행렬로 가득한 -사이공이라 불렸던 호치밍시,

늦가을 낙엽이 눈발처럼 휘날리는 황혼 녁 하노이의 호안키엠 호숫가,

기내에 연기가 자욱했던 프로펠러 비행기로 닿아 내리니 마치시골의 간이역 같던,더군다나 차편이 없어 당황했던 후에 .

몇 백년 전 건물이 그대로 있어 지금이 어느 시절인지 잊게 되는 호이안,

높은 천정 벽마다 기어 다니던 도마뱀들과 자야 했던 다낭,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사계절 봄 날씨 같아 휴양지로 각광 받는 달랏등..곳곳에 화가들이 있습니다.

문화적인 저력은 화실을 방문할 때도 느낍니다. 어느 작가고 즐겨 듣는 음악이 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전쟁 참전한 경험의 작가들임에도 바하든 쇼팽이든 재즈든 음악이 흐르는 화실. 보통이거든요.

그러니 이들의 문화적인 깊이를 어찌 얕보겠습니까? 아무리 마실거리 먹거리들이 거칠어도 작은 테이블과 장난감 같은 의자에 앉아, 길가 카페 그늘에서 담소하는 모습은 행복의 질을 다시 되짚게 만들곤 합니다.

우리와 수교한 지 14년, 참으로 많은 변화를 봅니다.

요즘은 APEC이 열리고 있는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

전에 그곳은 역사 속의 어느 시점이로든 돌아 갈 수 있는 마법의 땅이었습니다.

어려워서 물감 재료가 없던 화가들이 요즘은 그들 사회의 상류층입니다.

홍콩 전시 이후로 많은 외국 화상들과 개인 컬랙터들의 접촉으로 그리기 바쁘게 팔려 나가는 호황기를 10년 이상 구가하고 있습니다.

1925년 프랑스 식민지 하에 세워진 인도차이나미술대학-에꼴드 보자르 인도쉰ecole des beaux-arts-출신의 화가들이 베트남 화단을 이끌어 왔습니다.지금 하노이 미술대학의 전신입니다.

그중 발군의 화가로는 근대 미술의 삼인방으로 통하는 부이수안파이bui xuan phai(1921~1988)웬투니엠nguyen tu nghiem(1922~)웬상nguyen sang을 꼽습니다.

그림의 재료상 채색화에는 유화외에 칠화가 특징적입니다. 베트남의 미술은 우리에겐 수공예품에나 쓰던 옷칠의 특성을 살려 순수회화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중 파이는 베트남의 박수근입니다.

자기 집 앞의 좁고 오래된 건물들을 주로 그려 ‘거리의 화가’phai pho로 불립니다.

사회주의에서는 금기시한 추상화를 그려 1984년 부터 전시를 금지 당하고 1988년 암으로 죽기까지 그는 보석 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숙연해집니다.

아름답지 않은 아름다움을 향해 치열하게 싸운 화가 ,쉽되 속되지 않은 영혼, 화가의 작품은 영혼의 반영이라 , 돈을 위한 작품을 경멸했던 화가, 성냥갑, 물감 상자,담배갑, 나무판, 신문지 뭐가 되었든 그릴 수 있으면 행복했던 작가, 그가 남긴 작품은 몇 만점이라고들 추정합니다.

일찍부터 가장 가짜가 많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짝퉁 메이커는 놀랍게도 아들과 제일 알려진 컬렉터입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작품을 사게 되면 이런 작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소품 위주의 작품들을 바라보면 작지만 큰 작품, 비뚤거리나 당당한 선,이끼낀 담과 지붕의 굵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집,못생겼지만 아름다운 모델들..볼수록 작가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이 솟습니다.

베트남에는 화랑들이 성업 중입니다.

열댓 명 정도의 작가들이 잘 나가지요.

요즘 작가들의 문제는 다작입니다. 미리 돈을 받아 놓고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화랑들이 가져 가는 작가들이 많습니다.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마음을 끄는 작품들 만나기가 힘들어 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 작품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팜루안 , 당수안호아, 레꽝하, 레탕손, 홍비엣중,웬쭝, 웬탕빈, 레끄엉, 꽁꿕하,킴도안,쩐류호등 유명작가들이 있습니다

화랑 돌기를 권합니다. 하노이에 있는 항봉 거리나 짱티엔 거리에 가면 많은 화랑들이 있습니다.

인기 작가는 어느 화랑에나 같지요. 하루만 돌아도 어느 화가가 유명 작가인지 금방 압니다.

유명작가보다는 좋은 작가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들어와 앉는 기분이 드는 그런 작품 있습니다.

유명작가는 너도 나도 다 걸고 있으니까요. 얼이 들어가 있지 않는,너무 비슷한 작품이 많아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제일 실망하고 있을 분은 후학을 양성한 하늘에 있는 파이일 것입니다.

팔기 위해 그리지 말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붓을 잡아라.

예쁘게 그리려 애쓰지 마라

아름답지 않은 아름다움을 찾으라.

그림은 눈으로 보고 귀로는 보지 마십시오.

*이 글은 어느 잡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2007. 05. 21